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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 일기 8화. 뇌는 회복된다 – 신경가소성과 공황장애자의 희망공황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2025. 5. 19. 17:53
공황장애를 겪으며 가장 두려웠던 건,
“내 뇌가 망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늘 불안에 예민하고,
작은 일에도 심장이 뛰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잠도 못 자고…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감각이 생길 때,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 그런데, 과학은 이렇게 말한다.
“뇌는 고장 난 게 아니라, 단지 회로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회로는 다시 바꿀 수 있다.”이게 바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또는 [뇌가소성]이다.
가소성이란 단어는 영어로 Plasticity라고 하는데, 플라스틱을 생각하면 된다.
플라스틱은 열을 좀 가하면 구부러트리고, 펴고, 말고, 접고 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뇌가소성이라는 말은 뇌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 뇌는 ‘자주 가는 길’을 더 넓힌다
나는 가끔 뇌를 도시에 비유한다.
- 도시의 주요한 물리적인 요소는 건물, 그리고 길이다.
- 우리 뇌세포 자체는 건물이다.
- 뇌세포들 사이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 시냅스라는 길로.
- 자주 가는 길은 점점 넓은 도로가 된다.
- 드물게 가는 길은 풀숲 속 좁은 오솔길이 되다가 심하면 길이 끊긴다.
공황장애를 겪는 동안,
내 뇌는 이런 회로를 자주 탔다:“작은 자극 → 불안 → 불쾌감 → 공포 → 무기력”
이 경로가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그 길이 넓고 편해진 것이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자동으로 그 넓어진 길을 타게 된다.
🛠️ 그런데 이 길은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신경가소성이 말해주는 건 아주 단순한 진리다.
“뇌는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자주 쓰는 길을 바꾸면, 뇌는 반응을 바꾼다.”예를 들어
- ‘불안 → 숨 고르기 → 산책 → 안정’
- ‘스트레스 → 글쓰기 → 정리 → 해소’
이런 새로운 회로를 의도적으로 반복하면
뇌는 그쪽으로 길을 넓혀준다.뇌 안의 길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죽기 직전까지 바뀐다.
📉 나이 들면 뇌세포는 줄어든다, 그런데…
사실 나이가 들수록
뇌세포, 즉 건물의 숫자는 조금씩 줄어든다.
특히 전전두엽(이성 조절)과 해마(기억)에서 많이 줄어든다.하지만 희망은 여기에 있다:
"뇌세포 수가 줄어도, 남아 있는 뇌세포 간의 ‘연결 수’를 늘릴 수 있다.”
즉, 건물은 줄어도
도로망(시냅스 연결)은 더 복잡하고 효율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이게 우리가 배우고, 회복하고, 적응할 수 있는 이유다.
🍷 술은 뇌의 회로를 망가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
신경가소성을 이해하면
왜 지속적인 음주가 공황을 악화시키는지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술은 감정 조절과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 자주 마시면 이 기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굳어져버린다.
- 술은 회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짧고 즉각적인 반응 회로만 남긴다.
결과적으로,
공황을 진정시켜야 할 뇌의 능력이 퇴화된다.
🪫 운동 부족도 마찬가지다
운동은 단순한 체력 문제가 아니다.
- 걷기는 건물간 연결을 늘리고 강화하는데 최고의 활동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하게 증명된 치매 예방법이다.
-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건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내는 훈련이다.
- 뇌는 움직임과 감정을 함께 처리하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감정도 정체되기 쉽다.
🌱 나는 아직 바뀌고 있다
공황장애를 겪으며
내 뇌는 한때 한쪽 길만 탔다.
“불안 → 공포”의 회로는 너무 빠르고 익숙했다.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새로운 회로를 타고 있다.운동, 감정 표현, 수면, 글쓰기, 대화, 절제된 음주…
이 모든 게 내 뇌에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준 훈련이었다.
🧭 마무리하며
신경가소성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다.공황을 겪는 우리는
지금도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선택한 반복, 내가 감내한 하루,
내가 멈췄던 술잔, 내가 걸어 나간 산책길 속에
고스란히 새겨지고 있다.'공황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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