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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벼운 하루
    하루 하루 2024. 5. 14. 00:15

    날씨가 좋으면 괜히 밖에 나가 걷고 싶어진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누군가랑 같이 걷는 게 훨씬 낫다. 특히 내가 자의식을 내려놓고, 코맹맹이 소리로 농담 같은 걸 툭툭 던질 수 있을 때. 상대가 그걸 듣고 킥킥 웃어주면, 창피함 같은 건 사라지고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재밌는 사람이 된 것도 같고, 괜히 잘 살고 있는 기분도 든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다. 길가의 나무들은 슬쩍 흔들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겨울이 완전히 물러났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는 청계천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평범하게 걷다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괜히 목소리를 변조해보고, 이상한 말투로 말을 걸고, 갑자기 뜬금없는 농담을 던지고. 원래 평소 같으면 안 하던 행동들인데, 그날은 뭔가 좀 달랐다. 내가 나를 스스로 낮추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가 더 편해졌다.

     

     

     

    자꾸 나가고 싶은 계절

     

     

     

    산책로 옆 물가에선 특유의 물비린내가 났다. “아 냄새 별로야” 한마디 하곤 우린 금세 방향을 틀어 계단을 올라왔다. 굳이 참거나 분석하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싫으면 피해가면 되는 거고, 좋은 건 더 오래 누리면 된다. 그게 바로 산책의 묘미 아니겠나.

     

     

    다시 길 위로 올라오니 길가에 야장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 무리가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넘쳐났고, 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모두들 제각각의 방식으로 봄밤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린 그런 무리를 못 본 척 지나쳤다. 부러움 같은 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걷는 이 리듬과 분위기가 더 좋았다. 약간은 창피한 장난, 적당히 웃긴 말투, 그리고 그것에 함께 웃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게 참 좋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얇은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별빛은 희미했지만, 굳이 또렷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다. 오늘은 뭐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중에 문득 생각날 것 같은 그런 날. 코맹맹이 소리로 걷던 봄날, 우리는 아주 기분 좋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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